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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가 쓴 자소서를 고치면서, 문장은 한 줄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 URL: https://www.storybuilder.kr/cover-letter-material-not-sentences/
- Published: 2026-08-26T23:00:29.000Z
- Updated: 2026-09-14T04:37:20.000Z
- Description: 쓸 게 없는 게 아니라, 아직 꺼내지 않은 겁니다. 네 문항을 다시 쓴 과정을 그대로 보여드립니다.
- Author: IRON

몇 주 전, 이직을 준비하던 동생이 연락을 해왔습니다.

가고 싶던 회사의 공고가 드디어 떴다며, 자기소개서를 AI 도움 받아서 작성했는데 어떤지 판단해달라고요.

읽어보니 나쁘지 않았습니다. 문항에서 요구한 항목도 빠트리지 않고 들어가 있었고, 문단도 매끄럽게 이어지고, 맞춤법 틀린 곳도 없고 눈에 띄는 비문도 없고요.

**그런데 저는 전부 고치자고 했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쓰자고요.** 무난한 글이긴 했지만, 나를 제대로 팔 수 있는 글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내 이야기가 아닌 게 문제였습니다

「업무나 일상에서 AI 기반 도구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구체적으로 작성해주세요」라는 문항이 있었습니다. 아래는 AI가 써준 답입니다.

> 방대한 선행 연구 문헌을 효율적으로 정리하고 핵심 논거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AI 도구를 활용함으로써 작업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으며 (…) 이 경험에서 배운 핵심은 AI 도구가 인간의 판단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시간 소모적인 작업을 효율화하여 더 중요한 의사결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수단이라는 점입니다.

어떠세요?

틀린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내용이죠.

문제는 정확히 거기에 있습니다.

**이 문단에서 동생의 이름을 지우고 다른 사람 이름을 넣어보면 어떨까요?** 조금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제출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이 질문을 먼저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문장을 다른 사람이 그대로 쓸 수 있을까?**

**써도 된다면 그건 나를 보여주는 글이 아닙니다.** 잘 쓴 글일 수는 있어도, 나를 팔아주는 글은 아닙니다. 나머지 세 문항도 정도만 다를 뿐 상태는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초안의 문제는 문장력이 아니었습니다. **문장은 이미 만점이었습니다. 없는 건 재료였죠.**

## 쓸 말이 없는 게 아니라, 아직 꺼내지 않은 겁니다

이쯤에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쓸 만한 경험이 없어서 그래.'*  
이 동생도 정확하게 그 말을 했습니다. 10년을 일했는데 쓸 게 없다고요.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뭔가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무려 10년을 일했는데, 정말 쓸 말이 없을까요?

초안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 매장 총괄 관리자로서 저는 정기 위생 점검 체계를 수립하고, 식품 취급 절차를 표준화하는 작업을 주도하였습니다.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에서의 10년입니다. 승진과 승진을 거듭해서 점장까지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그 긴 시간이 '수립'과 '표준화'와 '주도'라는 세 단어로 접혔습니다.

동시에 맥락이 전부 사라집니다. 하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모릅니다. 요약한 게 자기이긴 하니까요. 그래서 "쓸 게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하지만 쓸 게 없는 게 아니라, 아직 꺼내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자소서를 수정하는 작업은 문장을 다듬는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서, 회사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놓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만 하면 잘 안 와닿죠. 그래서 실제로 2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며, 자소서를 다시 쓴 과정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 먼저, 회사를 읽었습니다

지원 동기 문항의 초안은 이랬습니다.

> ○○는 단순한 식품 제조기업이 아닌, 60여 년의 역사 속에서 발효와 자연이라는 변하지 않는 철학을 제품에 녹여온 기업입니다. (…) 이는 제가 이 분야를 선택하게 된 근본적인 가치관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축약하긴 했지만, 회사 소개서를 거의 그대로 옮긴 다음 "제 가치관과 일치합니다"를 붙였습니다. 홈페이지에 있는 말밖에 없죠. 이걸 읽고 이 사람을 꼭 한 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저는 문장을 손대기 전에 이 회사의 상황부터 찾아봤습니다. 공시와 기사를 뒤졌습니다. *(이때 AI를 활용했습니다.)*

- 2018년부터 해외 진출을 본격화하며 연구개발 투자를 늘렸는데, 10년 가까이 뚜렷한 성과가 없었습니다
- 해외 법인 하나는 자본잠식에 가까웠습니다

지금 이 회사는 해외에서 성과를 내고 싶은데,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채용 공고를 꼼꼼히 읽다가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식품안전기획 직무인데, 지원 자격에 산업공학과가 들어 있었습니다.

식품 전공만 뽑는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죠. 산업공학은 공정과 시스템을 설계하는 학문입니다. 이 회사는 지금 단순히 식품을 관리할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을 설계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었습니다. 사고가 난 뒤 수습하는 방식에서, 미리 막는 방식으로 옮겨가려는 중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같은 문항을 이렇게 다시 썼습니다.

> ○○는 오랜 기간 글로벌 시장을 지향하며 연구개발에 과감히 투자해 온 기업입니다. 저는 발효라는 모방하기 어려운 기술 자산이 세계 시장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다음 열쇠가, 나라마다 다른 식품 규제와 안전 관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체계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  
> 이 과제는 사후 대응만으로는 풀리지 않습니다. 위험이 발생한 뒤 수습하는 방식이 아니라, 발생 이전에 차단하는 예방 체계가 필요하며, 저는 그것이 이 직무의 본질이라 이해했습니다.

칭찬이 한 줄도 없습니다. 대신 이 회사가 지금 어디서 막혀 있는지를 넣었습니다.

여기서 AI가 못 하는 일이 정확히 드러납니다. AI는 문장을 우리보다 잘 씁니다. 그런데 그 회사가 지금 어디서 막혀 있는지는 모릅니다. 그리고 '나'라는 인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직접 알려주지 않으면 영원히 모릅니다.

## 그다음, 나의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이어서 실제 경험을 구체화하는 게 진짜 작업이었습니다.

수립·표준화·주도 아래에 뭐가 들어 있는지 계속 물었습니다. 한 번 물어서는 안 나옵니다. 본인에게는 그게 그냥 매일 하던 일이라 특별할 게 없거든요.

몇 번을 되묻고, 여러 각도로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재료들이 쏟아져 나오게 할 수 있었습니다.

- 실온 보관으로 규정된 부재료라도, 온도 변동이 큰 매장에서는 냉장 보관으로 바꾸도록 개선한 일
- 지역 위생 점검에서 같은 항목의 지적이 반복되는 걸 발견하고, 원인이 파트너들의 인식 부족과 교육 자료 부재라는 걸 짚어낸 일
- 직접 만든 교육 자료를 담당 매장에 두지 않고 관내 12개 매장 140명에게 공유한 일
- 그 결과 전국 140개 지역 중 10개 지역에만 주는 사내 위생 우수 상훈을, 상·하반기 연속으로 받은 일

없어서 안 쓴 게 아닙니다. **본인이 "매장 총괄 관리자로서"라고 줄여버려서, 맥락이 그 안에 묻혀 있었을 뿐입니다.**

![](https://storage.ghost.io/c/16/97/16977567-da52-4c33-851b-05a5654e0e77/content/images/2026/08/sb02-02--------------------1.png)

## 그리고, 둘을 이었습니다

이제 두 가지를 엮을 차례입니다. **자소서의 목적은 '지금 이 회사가 풀어야 하는 문제의 적임자가 나입니다'를 드러내는 것이니까요.**

앞에서 읽어낸 회사의 과제는 이랬습니다. 표준은 있는데, 나라마다 규제가 달라서 그대로는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고가 난 뒤 수습하는 방식에서, 미리 막는 방식으로 옮겨가려던 참이었죠.

그리고 꺼낸 이야기 중에 이런 게 있었습니다.

> 실온 보관으로 규정된 부재료라도, 온도 변동이 큰 매장에서는 냉장 보관으로 바꾸도록 개선한 일

사소해 보이지만 구조를 보면 똑같습니다. 표준이 있어도 조건이 다르면 그대로는 위험하다는 것, 그래서 조건에 맞게 다시 적용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핵심 경험 문항의 첫 문단을 이렇게 열었습니다.

> 식품안전 매뉴얼은 표준으로서 아무리 정교해도, 그것이 적용되는 현장은 매장마다 환경과 조건이 달라 동일한 기준이 언제나 같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 간극을 메우는 일이 현장 식품안전의 핵심이라고 보았고 (…)

지원 동기에서 한 말과 경험에서 한 말이 같아집니다. 둘이 따로 놀지 않게 되는 지점이 여기입니다.

협업 문항도 같은 방식으로 골랐습니다. 초안에는 감사 등급을 최우수로 올린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건 단순히 잘 해낸 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판단을 한 일로 바꿨습니다. 성과는 회사가 매겨준 것이고, 판단은 본인이 한 것이니까요.

대화에서 에피소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입고된 원부재료에서 이취가 감지된 일이 있었습니다. 식품공전 규격상으로는 안전에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고객이 마시는 순간 알아차릴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 규격을 충족한 원부재료의 사용을 미루는 일은 그 자체로 부담이 따랐고, 여러 부서의 협조와 상부의 판단이 신속히 모여야 했습니다. 저는 LOT으로 좁혀낸 명확한 근거를 전달해 협조 요청의 설득력을 높였고 (…)  
>  
> 이 경험을 통해, 서로 다른 입장의 부서를 한 방향으로 모으는 힘은 권한이 아니라 정확한 근거와 신속한 공유에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권한이 없어도 근거로 사람을 움직인 이야기입니다.

## 문장을 예쁘게 만든 대목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 작업을 하는 동안 저는 어떤 표현을 써야 좋은 글이 될 지를 고민하지 않았니다.** 문단 순서를 예쁘게 배치한 적도 없고요. 한 일은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회사를 읽은 것,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

AI가 쓴 글이 밍밍한 건 문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문장은 이미 우리보다 잘 씁니다. 없는 건 재료고, 재료는 회사와 본인 두 군데에서만 나옵니다. AI는 양쪽 다 모릅니다.

## 그런데 이 원고가 어떻게 됐냐면요

이 방법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같은 순서로 작업합니다. 다만 이 동생은 최종적으로 이번 이직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냉정하게 합격은 자소서만으로 결정되지 않죠.** 채용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같이 지원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그 회사가 그 시점에 필요로 하던 조건이 무엇인지, 혹은 이외 다른 수많은 요소까지. 변수가 정말 다양하고 복잡할 겁니다. 자소서만으로 넘을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더 아쉬웠던 건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몇 번을 되물어 겨우 꺼낸 그 이야기가, 딱 한 회사에 한 번 제출되고 끝났다는 겁니다.**

그가 가진 10년간의 경험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그걸 봐줄 사람이 한 회사의 채용 담당자뿐이었고, 그마저도 공고가 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공고가 안 뜨면 쓸 수 조차 없고, 문항이 다르면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고, 한 번 내면 그걸로 끝입니다. 쓰이는 방식과 범위가 너무 좁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다른 걸 하나 제안했습니다.  
**링크드인입니다.**

**공고를 기다렸다가 정해진 항목에 나를 욱여넣기보다, 차라리 더 자유롭게 나를 드러내서 팔리게 만드는 게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레터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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