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께서는 혹시 이런 경험 없으신가요?
저장해 둔 아티클은 47개, 읽다 만 PDF는 12개, 결제만 하고 못 본 강의가 3개. 그런데 어제 또 책을 한 권 샀습니다. 일은 잘하고 있는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무언가 하고 있다는 감각만큼은 계속 유지되고 있죠.
직장 생활을 몇 년쯤 하게 되면 이 풍경이 익숙해집니다. 회의는 그럭저럭 굴러가고, 산출물도 평타는 칩니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정체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책을 펴고, 트렌드 리포트를 읽고, 강의를 결제합니다. 적어도 도태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믿으면서요.
그런데 정말 성장하고 있는 거 맞을까요?
오늘은 이 질문에 답이 되어 준 한 문장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한 문장에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일하면서 바로 써먹는 아웃풋x성과 도감』을 읽다가 한 문장에 멈췄습니다.
"인풋은 단지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자기 성장은 오직 아웃풋에 달려있다."
(p.22~23)

처음에는 흔한 자기계발 명제처럼 들립니다. "더 많이 만들어라, 결과를 내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말이죠.
하지만 한 발 더 들어가 보면 결이 다릅니다. 이 문장이 정말로 짚고 있는 건 "생산성을 높여라"가 아닙니다.
인풋이 어느 순간 자기만족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우리는 안전합니다. 페이지를 넘기는 행위는 노력의 형태를 띱니다. 시간을 쓰고 있고, 머리를 굴리고 있고, 형광펜이 그어집니다. 산출물이 없어도 "성장 중"이라는 감각은 유지됩니다.
그리고 책이 다음 책으로, 강의가 다음 강의로 이어지는 동안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계속 미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어디쯤 와 있지?"
인풋의 방향이 뒤집히는 자리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인풋은 원래 불확실성을 줄이려고 하는 행위입니다. 모르는 걸 알기 위해서, 막힌 문제를 풀기 위해서 책을 펴는 거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인풋이 정반대의 역할을 하기 시작합니다. 불확실성을 줄이는 도구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견디는 방편이 되는 것이죠.
연봉, 직책, 산출물의 평가 등등. 어떤 객관 좌표로도 지금 내 위치가 또렷이 잡히지 않는 시점이 있습니다.
잘 가고 있는 건지, 옆길로 새고 있는 건지.
또래보다 뒤처졌는지, 앞섰는지.
지금의 회사에 더 머물러야 하는지, 떠나야 하는지.
이 흐릿함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불안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가장 익숙하고 가장 칭찬받아온 행위로 돌아갑니다. 학생 시절부터 30년 가까이 훈련받은 그 행위인 “공부하기”죠.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읽고 있는 자세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알리바이입니다. 부모도, 상사도, 자기 자신도 공부하는 행위만큼은 함부로 추궁하지 못합니다. "지금 공부 중이에요" 이 한 마디는 모든 정체를 잠정적으로 정당화합니다.
아웃풋이 그렇게 미뤄지는 진짜 이유
그러면 아웃풋은 왜 그렇게 미루게 될까요?
단지 귀찮아서가 아닙니다. 시간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아웃풋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놓는 순간,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가 외부 좌표로 환산됩니다.
글을 쓰면 → 글의 수준이 보입니다.
기획서를 내면 → 기획의 깊이가 보입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공개하면 → 내 현재값이 드러납니다.
흐릿했던 자리가 또렷해지는데, 그 또렷함이 반드시 좋은 소식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차라리 흐릿한 편이 낫습니다. 흐릿한 동안에는 가능성이 살아 있으니까요. "아직 다 준비된 게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고, "좀 더 공부하고 나서"라고 미룰 수 있습니다. 인풋은 이 흐릿함을 합법적으로 유지해 주는 가장 우아한 방법입니다.
책을 한 권 더 읽고 시작하면 되니까요. 강의를 한 코스 더 듣고 시작하면 되니까요.
그렇게 시작은 자꾸만 다음으로 미뤄집니다.
솔직히,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몇 달 동안 이 뉴스레터를 멈춰 두고 있었습니다. 매주 한 편씩 발행하던 글이, 어느 순간부터 격주가 되고, 한 달이 되고, 그러다 몇 달이 됐습니다.
이유를 자문해 보면 표면적으로는 명확했습니다.
아웃풋이 귀찮았습니다.
글을 한 편 쓰려면 한참 앉아 있어야 하고,
머리를 쥐어짜야 하고,
다 쓰고 나면 부족함이 보입니다.
그게 싫어서 자꾸 미뤘습니다.
당장 바쁘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당장 해야하는 일이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분주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책은 한 권 더 쌓이고, 저장해 둔 아티클은 한 편 더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걸 "공부하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정리했습니다.
뉴스레터를 못 쓰고 있는 건 맞지만, 적어도 책은 읽고 있으니까. 강의는 듣고 있으니까. 그렇게 인풋이 자기증명이 되어 줬습니다. 정체된 느낌이 들 때마다 책을 한 권 더 사면, 그 불안한 감각이 잠시 누그러졌습니다.
그런데 『일하면서 바로 써먹는 아웃풋x성과 도감』의 그 문장에 멈춘 그날, 솔직하게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 몇 달 동안 쌓인 인풋이 나를 어디로든 데려가 줬는가?
돌아보니 거의 없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무언가 만들어 내놓았던 자리에서만 성장이 있었습니다. 어설프게라도 글을 쓴 자리, 미완성이라도 정리해 내놓은 자리. 그 외의 모든 "공부"는 냉정하게 말하면 합리화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그 깨달음 이후에 내놓는 첫 번째 아웃풋입니다.
성장은 아웃풋을 만들어 내놓는 순간 생깁니다
아웃풋이 자기 성장을 만든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여기에 있습니다.
잘 만든 아웃풋이라서가 아니라, 만들어 내놓는 행위 자체가 좌표를 발생시키기 때문입니다. 부족함이 드러나도, 그 부족함은 흐릿함보다 다루기 쉽습니다. 흐릿함은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지만, 드러난 부족함은 다음 한 걸음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 책의 메시지를 단순히 "더 많이 만들어라"로 읽으면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이 책이 진짜 가리키는 자리는, 인풋이 더 이상 답을 주지 않는 시점에 우리가 들어섰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한 권 더 읽어서 풀릴 문제였다면 진작 풀렸을 겁니다. 지금 흐릿한 건 자료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만들어 내놓지 않아서입니다.
오늘 책상에 펴 둔 그 책을 덮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그 책 옆에, 작아도 좋으니 무언가 만들어 내놓는 자리를 만들어두어야한다는 겁니다.
읽은 한 문단에 대한 짧은 코멘트든, 어제 회의에서 본 풍경에 대한 메모든. 성장의 출발점인 좌표는 거기서부터 생깁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책에서 뽑아낸 문장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