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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소서가 어려운 진짜 이유는 글쓰기 실력 때문이 아닙니다

자소서가 안 써지는 건 글쓰기 실력 때문이 아닙니다. 평소 메일은 잘 쓰면서 자소서만 첫 줄에서 막히는 진짜 이유, 그리고 흔한 경험 한 줄을 나만의 무기로 바꾸는 법을 풀어냈습니다.

자소서가 어려운 진짜 이유는 글쓰기 실력 때문이 아닙니다

이직을 준비하던 지인이 자기소개서를 붙잡고 끙끙대다가
저에게 도와달라고 연락해오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글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부럽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매번 첫 줄부터 막혀서 참 힘들다고 합니다.
자기가 글재주만 타고났으면 술술 풀려서 정말 좋았을 거 같다고요.

충분히 이해되는 말입니다.
자소서 앞에서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했을 생각이니까요.

커서만 깜빡이는 빈 화면,
썼다 지운 문장 몇 줄,
참고하겠다고 열어둔 합격 자소서 탭까지.

그 앞에서 하게 되는 생각은 대개 비슷할 겁니다.

'나는 왜 이렇게 글재주가 없을까.'

저는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같은 말을 하게 됩니다.
자기소개서가 막히는 건 글쓰기 실력 때문이 아니라고요.

문제는 글쓰기 실력이 아닙니다

흔히 문제의 원인을 글쓰기 실력에서 찾게 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말 그대로 '글을 쓰는 행위'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착각이 드니까요.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분명히 평소 카톡도 업무 메일도 막힘없이 쓰고 계시지 않나요?
그런데 왜 자소서를 쓰려고 하면 첫 문장부터 굳어버리는 걸까요?

정말 글쓰기 실력의 문제였다면, 글로 업무를 하는 것부터 막히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이제 AI 시대잖아요.

AI의 글쓰기 실력은 냉정하게 봐도 압도적입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글을 작성해주기까지 합니다.

AI의 결과물이 100%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웬만한 글쓰기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실력 좋은 AI까지 곁에 있으니 이제 자기소개서 문제가 해결됐을까요?

글쎄요…

만약 그랬다면, AI가 등장한 이후에 저에게 자소서 조언을 구하는 이들이 크게 줄었어야 할텐데요.

하지만 실제로는 AI가 나오기 전과 후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AI 활용도가 부족해서일까요?

자기소개서의 정의를 생각해보면 해답이 금방 나옵니다.

자기소개서는 내가 회사와 직무에 적합한 사람임을 보여주는 문서입니다.

자기소개서에서 중요한 건 '소개서'가 아니라, '자기'입니다.
자기소개서는 말 그대로 '자기'를 소개하는 행위니까요.

문제의 해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소개서의 글은 AI가 작성해줄 수 있지만,
자신의 이야기는 AI가 만들어 주지 못합니다.

없는 이야기로 만들어서 완성한다면,
그 자체로 자기소개가 아니게 되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글쓰기 실력은 '소개서'라는 형식에만 활용될 뿐,
'자기'의 영역은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자기소개서 작성이 막히는 진짜 이유는
글쓰기를 못하는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고 있는 겁니다.

사람은 과정에서 드러납니다

자기소개서를 잘 쓰는 것은
문장력 향상이 아니라, '나의 스토리' 구축에 달려있습니다.

스토리라고 하니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별 거 없습니다.

단순히 어떤 회사/직무에서 몇 년을 근무했느냐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무슨 생각과 관점으로 행동했는지가 스토리의 소스입니다.

내가 왜 그 선택을 했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어떤 순간에 나라는 사람이 드러났는지.

이것들을 하나로 이어 붙이면, 그게 바로 스토리입니다.

자격증, 학점, 수상 경력은 누구나 나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스펙을 가진 이는 나 말고도 많습니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세상에 하나 뿐이니까요.

그 차이는 성취가 아니라, 판단과 선택에서 생깁니다.

같은 경험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남는 게 달라집니다.

결과(점)로 읽으면
→ '무엇을 했는지'가 남습니다. 누구나 똑같이 쓸 수 있습니다.

과정(선)으로 읽으면
→ '왜 그랬는지'가 남습니다. 오직 그 사람만 말할 수 있습니다.

결과는 같을 수 있지만, 과정이 비슷할 가능성은 0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베낄 수 없는 나만의 과정이, 자소서에서 진짜 무기가 됩니다.

흔한 한 줄을 직접 바꿔보겠습니다

가장 흔한 자소서 소재 하나로 만들어보겠습니다.

"4학년 전공 팀 프로젝트에서 팀장을 맡아 발표를 준비했다."

라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대부분 이렇게 씁니다.

4학년 때 팀장을 맡아 팀원들을 이끌며 리더십과 협업 능력을 길렀습니다.

실제 경험을 기반으로 했으니 틀린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전혀 보여주지 못하죠.

결과만 있고, 과정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대학 생활 시절에 팀장을 한 번이라도 해본 이들이 한둘이 아닐 거라는 점입니다. 100명이 있다면, 아마 대부분 비슷하게 썼을 겁니다. 차별화가 전혀 되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그 100명이 모두 똑같은 경험을 했을까요?
그랬을 리가 없겠죠.

같은 팀장 경험을 했어도,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생각과 관점을 가졌을지는 100명이 전부 다릅니다. 선 대신에 점으로 읽어서 '리더십'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리는 순간, 그 다름이 전부 지워지고 납작해집니다.

그럼 이제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집중해보겠습니다.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발표를 일주일 앞두고 조가 둘로 갈라졌다. 한쪽은 슬라이드에 내용을 다 담아 안전하게 가자고 했고, 다른 쪽은 키워드만 띄우고 말로 풀자며 며칠을 평행선이었다. 나는 한쪽 손을 들어주는 대신, 두 사람을 따로 만나 왜 그 방식을 고집하는지 들어봤다.
한쪽은 질문이 들어왔을 때 근거가 없으면 불안하다고 했고, 다른 쪽은 글자만 빽빽하면 발표 집중도가 떨어질까 봐 걱정이었다. 둘 다 결국 발표가 부실해 보일까 봐 두려운 거였다. 그래서 본 슬라이드는 키워드로 띄우되, 예상 질문과 근거는 부록으로 뒤에 붙여두자고 정리했다. 양쪽 걱정이 풀리자 멈춰 있던 작업이 다시 돌아갔다.

이 과정을 들여다보면, '리더십'이라는 납작한 단어 뒤에 사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누가 옳은지를 가리는 대신, 진짜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사람.

같은 팀장이어도 누구는 다수결로 정하고, 누구는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입니다. 이 사람은 대립의 표면 아래 깔린 진짜 이유를 들여다보는 쪽이죠.

'리더십과 협업 능력'이라고 추상적이고 납작하던 표현이, 비로소 이 사람만의 스토리를 통해 입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이 한 줄을 통과시키면, 같은 경험이 이렇게 바뀝니다.

발표 방식을 두고 조가 둘로 갈라져 며칠간 진척이 없었습니다. 저는 한쪽 편을 드는 대신 양쪽을 따로 만나 속내를 들었고, 두 주장이 사실 발표가 허술해 보일까 봐라는 같은 불안에서 나왔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본 슬라이드는 간결하게, 근거는 부록으로 보강하는 안으로 두 의견을 모두 살렸고, 멈춰 있던 작업은 다시 굴러갔습니다.

'리더십'이라는 단어도, '협업 능력'이라는 표현도 한 번 안 썼습니다. 그런데 첫 문장보다 이 사람의 리더십과 협업 능력이 훨씬 또렷하게 보이죠.

바뀐 건 문장력이 아닙니다. 단어로 말하던 것을, 그게 실제로 드러난 한 장면을 끄집어내서 보여줬을 뿐입니다.

결국 나를 아는 일입니다

다시, 지인의 부러움으로 돌아가보려고 합니다.

그가 부러워한 건 글솜씨였습니다.

하지만 진짜 부러워해야 할 건 거기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건 타고나는 영역도 아닙니다. 앞의 그 팀장도, 처음엔 '리더십'이라는 흔한 단어 하나뿐이었으니까요.

내가 살아온 과정에 집중하기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미 이야기가 충분합니다.
다만 아직 한 줄로 꿰어본 적 없을 뿐이죠.

그러니 펜을 들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정말 나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